(점심을 뭘로 먹지?) 하며 냉장고를 뒤지다 야채박스에서 뽕잎 순을 한 봉다리 찾았다. 열흘도 훨씬 지난 건데 검은 비니루 봉다리 속에 있어 잘 안보이니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냉장실에서 보관이 잘되었는지 하나도 물크러지지 않고 여전히 신선해 보인다. 앞마당 뽕나무에서 어린 순 나오는 거 갖은 양..
멀리 사는 벗으로부터 오월 황금연휴 때 놀러 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그런데 이건 공자님 말씀이고, 농부는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하다. 나는 벗이 오지 못하게 뭐라 핑계를 대려고 머리를 굴리는데, 입이 먼저 “그래~오래마이야~ 얼굴 한버 보..
장터목산장에서 이틀째 밤을 보내는데, 첫날 밤 벽소령산장에서 오작동 되었던 나의 두뇌시스템이 또다시 에러를 일으켰다. 나의 두뇌는 <이틀째 산길 걷느라 고생한 당신 충분히 잠을 자라.>는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이웃 침상에서 자는 산동무들의 코골이 공연을 관람하라.>는 어리석은 명령을 내린..
한방 맞으면 즉시 행복해지는 신비의 주사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놀랍게도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성삼재를 지나 노고단에 올라서서 진달래가 만개한 지리능선 길로 접어드는데 갑자기 날듯이 기분이 좋아졌다. 나 홀로 산행이라 여유있게 휘파람 불며 임걸령을 향해 걷는데 뒤에서 누가 ..
이런저런 사정으로 감나무 전정 작업을 못하고 있다가 전동가위를 확보하였다. 고가의 충전식 전동가위는 많은 과수 농가가 임대사업소에서 신청 순으로 빌려 쓰는 것이라 내가 시간이 날 때는 가위가 다른 농가에 가 있고 가위가 준비되었을 때는 내가 또 바쁘고 이래저래 숨바꼭질 하다 작업이 지연되었는데, 이제 ..
엄천강은 열두번 굽이쳐 흐른다. 휴천 용유담에서 유림 함허정까지 열두굽이 빼어난 곳을 화산12곡이라 하여 옛 선비들은 한시를 12수씩 지었는데, 긴 세월 문집 속에서 잠자고 있다가 최근 한 재야 한학자에 의해 국역 공개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엄천강의 명승은 화산제1곡 용유담이 세간에 알려져 있..
내가 반나절이면 과수원 이천 평 전정 작업을 끝낼 수 있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나름 근거가 있었다. 우선 나는 전동가위 업체가 올린 제품 소개 동영상을 한편 보았는데, 농사라고는 한 번도 지어보지도 않은 것 같은 금발의 외국 여성이 활짝 웃으며 전동가위로 포도나무 가지를 치고 있었다. 보통 톱으로 또..
아침에 공구상자를 들고 감나무 전정 작업하러 집을 나서는데 웃음이 막 나왔다.(이건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이야~ 앗싸~) 매년 이맘 때 이삼일 감나무 전정하느라 높은 사다리에 올라서서 톱질을 하고 나면 손가락 마디마디 물집이 잡히고 다리가 후들거렸는데, 올해는 충전식 전동가위를 빌려 손쉽게 작업을 ..
요즘 나는 책과 씨름하고 있다. 카카오마케팅 어쩌고저쩌고 하는 책인데 눈으로 일단 한번 다 읽었다. 비슷한 내용으로 나온 시디도 있어서 그것도 얼마 전에 한번 다 보았다. 공자 말씀에 사람은 예순 살부터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고 했다. 공자 말씀대로라면 이순(耳順)을 바라..
지리산꾼들이 서식하는 지리구구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인기 연재되고 있는 꼭대 지종석 선생의 <엄천강 역사기행>에서 재밌는 글을 읽고 감회가 남달라서 소개 해본다. (지종석 선생은 서울 사람으로 지리산을 사랑하는 산꾼이자 재야 사학자다. 지리산에 관해서라면 지리산에 사는 사람보다 더 잘 아는 사람..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이 생기고 나서 전국에 둘레길 열풍이 불었다. 바다를 보며 걷는 힐링로드 해파랑길, 충무공이 걸었다는 백의종군길, 북한산성 둘레길, 인천 둘레길, 강릉 바우길, 토성산성 어울길, 태백산맥 문학 기행길 등등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각종 둘레길이 전국 방방곡곡에 생겨 좋은 반응을 얻..
오늘 이야기는 ‘엄천강은 살아있다’다. 제목을 보고 지리산농부가 엄천강에서 송어만한 꺽지를 잡아먹은 이야기라도 하려고 그러나? 또는 엄천강에 수달이 살고 있다는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나? 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미리 말하는데, 이건 전혀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이야기는 지리산의 ..
우수를 넘긴 논은 개구리 세상이다. 봄비가 논고랑에 웅덩이를 만들자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이 웅덩이에서 물장구를 치며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로 세레나데를 부르고 난리법석이다. “아르러르러러 아르러르러르 아러어러어러럴까르러르” 요즘 암 개구리는 노래잘하는 수 개구리를 좋아해서 수 개구리..
스톡을 한 다발 사가지고 왔습니다. 스톡은 프리지어처럼 봄소식을 전해주는 절화로 요즘 인기를 끌고 있지요. 색상이 다양하고 겹으로 피는 꽃도 있어 여러 가지 섞어서 다발로 만들면 눈이 부십니다. 향기도 프리지어 못지않게 진하지요. 함양읍에 새로 생긴 강산골 로컬 매장에서 사가지고 왔습니다. 서상에 있는 ..
지리산농부가 서울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촌놈이 왠일로 서울에 다 갔냐고?) 맞은편에 20대 아가씨와 70대 할머니가 앉아있었다. (와~ 촌놈은 서울 가면 안 되나? 볼 일이 있어 갔다. 와) 20대 아가씨는 빨간 루즈를 바르고 눈썹 아래도 핑크로 채색하여 안 그래도 건강미 넘치는 얼굴이 더 예뻐 보였는데, 핸드백에..
함양읍에 귀농귀촌 사랑방이 생겼다. 도시에서 시골로 들어와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한 귀농귀촌인들이 아무 때나 부담없이 들러 차도 마시고 필요한 정보도 구하고 이웃도 사귈 수 있는 사교의 장이 생겼다. 시골 그 중에도 함양이 좋아 함양으로 귀농귀촌 하고 싶은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
<으이~ 동생~ 곶감 다 팔았나~ 다 팔았으면 내꺼 좀 팔아줘 봐바~> 강 건너 갑수 행님이 전화가 와서 곶감을 좀 팔아 달라는데, 사실 나도 내 곶감 파느라 바쁘다. 나는 <한번 건너가 볼께요오~>(행님~ 판로가 없으면 이제 생산량을 좀 줄여 보시오) 하고 모기 소리로 대답했다. 구정 대목이 닥치니 곶감..
새해 첫날 그릇을 굽는다. 접시 두 개, 국 그릇 하나, 밥 그릇 두 개... 가마의 열기가 식기를 기다렸다가 설레는 마음으로 그릇을 꺼내보면 항상 그렇듯 의도한대로 구워지지는 않는다. 가마는 이십 년째 사용하고 있는 작은 전기 가마인데 좀 작긴 하지만 취미삼아 그릇 몇 개 구워내는 데는 아무 문제없다. 가마를..
<막살 놔~ 사람이 하던 짓 안하면 큰일 나는 기라~> 내가 올해는 무유황으로 곶감을 한번 만들어 보겠다고 하니 매년 감 수확 할 때부터 곶감깎기 작업을 도와주시는 절터댁 아지매가 말렸다. 곶감 만드는 거 한 두해 해본 거도 아닌데 왜 씰데 없는 짓을 하느냐고 펄쩍 뛰며 적극 만류했다. <안 돼~ 안 돼~..
기온이 많이 내려갔다. 아궁이 군불 때는 집이 대부분인 산골마을에는 집집마다 땔감이 가득하다. 남자가 있는 집은 말할 것도 없고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에도 어떻게 장만하셨는지 땔감이 가득하다. 마치 땔감으로 거대한 장작옹성을 쌓아 겨울 추위를 물리칠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거대한 성벽위로 머리를 내밀..